예전엔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한다. 일대에 원래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뻔한 답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니 조금 더 질의응답의 해상도를 높여보자.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을 두고 굳이 작은 궁으로 자리 잡은데에는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고종의 근대국가에 대한 로망 실현 목적이 컸다. 실제로 덕수궁 내에는 석조전과 같이 근대적 시도가 있었다.
근대 국가의 기초는 법치의 확립이었다. 덕수궁 남측에는 사법기관인 평리원이 설치된다.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대한제국의 수명 자체가 짧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리원의 기틀 위에 조선총독부는 1928년 경성재판소를 건립한다.
당시에도 꽤 공들여 세운 건물이고 전란에서도 살아남은 청사였기에 대한민국 정부는 이 건물을 대법원으로 계속 사용한다. 1995년에 서초동 대법원 시대가 열리며 한반도의 근대 법치를 상징하던 건물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한다. 리모델링을 거쳐 2002년부터 현재까지 미술관으로서 훌륭히 기능하고 있다.
그 말인 즉, 덕수궁 돌담길은 원래부터 삭막한 관공서 뒷길이었다는 것이다. 그 주변을 배회하며 우수에 젖은 남녀가 있다면 그 목적지 대부분이 대법원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미신이 아니라 그저 현상에 대한 담담한 서술이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과 같은 보행자 친화적인 길이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나마도 주 이용자는 근처 오피스 빌딩의 직장인들이다. 커플이 갈만한 카페나 맛집도 적다. 애초에 연인이 걸을 이유가 없었다고나 할까. 거길 간다고 해도 차라리 덕수궁 야간개장이나 들어갈 일이지 그 돌담길을 걷는 코스를 짜는 시점에서 아웃이다.
궁금하면 연인에게
"이번 주말에 정동길 걷자"
라고 해보자. 80% 이상의 확률로
"뭐하게?"
라는 물음이 되돌아 올 것이다. 이 질문을 미리 예상했다면 어서 시립미술관 전시회나 덕수궁 야간개장 티켓을 들이밀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파괴신 주호민 작가의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는 나름 성공적이었다는 것 같다.
돔황챠!!
@감성콘 [https://www.instagram.com/gam_seong_con/]
<건축을 전공하고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건축을 배우던 시절을 잊지 못해 종종 감성글을 쓰지만 노가다 감성이 섞여버려 고민하는 중인 듯 하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같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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